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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과 디자이너의 상생 디자인

상생디자인의 다섯가지 이익
2021-08-04734


/ 김신(디자인 칼럼니스트)

사업을 하는 사람들과 디자이너가 협업한 사례는 언제 시작되었을까? 디자인이라는 개념은 산업혁명, 다시 말해 대량생산의 산물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대량생산 체제는 19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탄생했다. 게다가 그 시기의 사업가들은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하기보다 기계를 이용해 상품의 가격을 낮추는 데 급급했다. 진정한 의미의 디자인 개념이 탄생한 것은 20세기 들어와 독일의 혁신적인 디자인 학교 바우하우스, 미국 최초의 산업 디자이너가 등장한 1920-30년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상공인과 디자이너의 협업은 그것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세계 최초로 디자인을 적극 활용해 비즈니스를 확장한 사람은 영국의 조자이어 웨지우드다. 산업혁명 초기인 18세기 중후반부터 오늘날의 디자인 개념을 도입했으니 정말 빠르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에는 사실 ‘디자인’이라는 용어조차 없었다. 디자인이라는 말은 20세기 전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그러니 조자이어 웨지우드야말로 선구적인 경영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도 사업 초기에는 오늘날의 소상공인에 가까웠다.

웨지우드는 이제 막 부자가 되기 시작한 런던의 자산가들을 유혹하려면, 무엇보다 다양한 디자인의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찍이 인식했다. 또한 유행에 민감한 런던 중상층을 겨냥했으므로 지방의 도자기 공방에서 일하는 도공들로는 이 유행을 충족시키기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리하여 런던에 거주하는 예술가를 직원으로 고용하지 않고 ‘아웃 소싱’으로 활용하는 탁월할 경영 능력을 보여줬다. 그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켜 ‘모델러(modeller)’라고 불렀다. 영국의 디자인 역사학자인 에이드리언 포티는 이를 최초의 디자인 협업 사례라고 평가한다. 결과는 무척 긍정적이었다. 늘어나는 중상층의 안목을 만족시킴으로써 웨지우드는 영국의 대표적인 도자기 브랜드가 된 것이다.

 

상생 디자인의 다섯 가지 이익

18세기에 이미 디자인의 성공사례가 있었으니 21세기에는 그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소상공인과 디자이너의 상생 디자인이 어떤 이익을 줄까?

첫 번째는 오리지널 디자인을 갖는다는 것이다. 한국이 선진국으로 거듭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은 한 것은 기업들의 고유 모델 개발이다. 오늘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한국의 대기업들도 처음에는 미국이나 독일, 일본 제품의 조립공장에 불과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1976년에 첫 생산된 포니가 최초의 고유 모델이다. 당시 한국 자동차 산업은 자동차를 디자인할 능력이 없어서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에게 의뢰해 첫 오리지널 모델을 개발했다. 포니로부터 현대자동차의 신화가 시작되었고, 오늘날 글로벌 100대 브랜드 가운데 36, 자동차 부분 5위에 올랐다.

을지로에 거점을 둔 조명 브랜드 아고(Ago)는 한국의 조명산업에서 부족한 ‘오리지널리티’를 보완하고자 1919년에 출시되었다. 을지로에서 조명 유통을 하는 이우복 대표와 스웨덴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유화성이 만나 서로의 장점을 공유하며 브랜드를 만든 것이다. 김진식 등 국내외 디자이너들이 협업해 오리지널리티가 분명한 조명을 생산해 출시한 지 불과 1년 만에 월페이퍼 디자인 어워드 2020에 선정되었다.

굳이 제품이 아니더라도 소상공인의 고유한 디자인은 대단히 중요하다. 점포 하나를 운영하더라도 간판부터 매장의 인테리어, 명함, 홍보물 디자인은 그 점포에 대한 신뢰성을 높여준다. 오늘날 모던 상업공간이 네티즌들에 의해 평가를 받고 그 평가가 공개되는 세상이다. 많은 이들이 평가하는 기준 가운데 그 매장이 판매하는 상품(그것이 음식이든 머리커트 같은 서비스든)품질뿐만 아니라 눈에 띄는 모든 시각적 대상의 디자인 역시 포함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상품의 질과 특성, 직원의 서비스, 그리고 시각적이고 물리적인 디자인이 종합돼 소상공인의 작은 사업도 하나의 브랜드가 된다. 

두 번째는 디자인은 단지 상품의 외관만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디자인은 소비자에게 상품이 전달되는 전 과정에 관여한다. 디자인은 상품의 개발과정과 그것의 유통, 그리고 대중의 시선에 노출되고 판매가 이루어지는 매장과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서비스를 모두 포함한다. 물론 일시적으로 벌어지는 홍보와 프로모션도 중요한 디자인 대상이다. 어떤 사람이 대기업의 통신 서비스를 이용하고자 대리점을 방문하면, 그는 그 작은 대리점 공간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이 그 통신사에 대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한다.

결국 특정 장소의 아주 구체적인 경험이 글로벌한 대기업에 대한 인상을 만든다. 그곳의 간판, 내부의 세련된 디자인, 직원의 전문적이 응대로부터 그 브랜드에 대한 믿음이 생겨나는 것이다. 물론 대기업 대리점에 방문하는 소비자는 이미 막대한 광고, 홍보의 힘으로 그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와 믿음 갖고 입장한다. 하지만 소상공인의 매장에 들어설 때 소비자는 그곳에 대한 사전 이미지가 전혀 없다. 그 장소의 경험이 해당 소상공인의 브랜드를 경험하는 전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 매장은 단순히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라 말하자면 광고이고 홍보이며 프로모션 공간인 셈이다. 그곳은 대단히 적극적으로 디자인되어야 한다. 방문자가 그곳에서 상품과 서비스의 디자인이 세련되고 특별하다고 느끼면, 그곳을 대기업이 운영하는 것으로 느낄 것이다. 이처럼 디자인이란 제품의 외관에 국한되지 않고 총체적인 것다. 결국 소상공인의 작은 사업이라고 할지라도 브랜드 개념을 갖고 시작해야 한다. 인식의 문제에서는 규모가 아니라 물리적인 경험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소상공인에게도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

세 번째 상생 디자인의 이익은 소비자에게도 돌아간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상품은 그 규모로 인해 재빠르게 새로운 트렌드를 수용해서 대응하기 쉽지 않다. 이에 반해 소규모 인원이 운영하는 소상공인의 상품은 훨씬 빠르게 시대의 트렌드를 적용시킬 수도 있다. 물론 개발 기간과 엄청난 투자비가 들어가는 아이티 관련 제품은 예외겠지만, 라이프스타일 관련 상품들은 이에 적합하다. 최근 젊은 세대의 인테리어와 라이프스타일 관련 상품에 대한 관심과 소비는 거의 폭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상품의 다양성을 추구한다. 이러한 시대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이 소상공인의 장점이고, 그들이 적절한 디자이너를 찾는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시장의 다양성이라는 결실로 나타나 소비자에게 이익을 준다.

마지막은 디자이너에게 돌아가는 이익이다. 과거 소상공인들은 디자인이 필요하면 대개 간판집이나 명함집, 인쇄소처럼 제작과 시공은 가능하지만 디자인의 전문성이 없는 곳을 찾았다. 그로 인해 미적 감각이 떨어지는 상품과 인쇄홍보물, 간판들이 판을 치는 원인을 제공했다. 최근 주변을 둘러보면 그런 낙후된 디자인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소상공인들도 디자이너와 적극적으로 협업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최근 기업의 문이 좁아져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기회가 적어지고 있다. 이때 굳이 대기업만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오늘날 소상공인들과의 협업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다. 이 시장은 디자이너들에게 또 다른 기회를 줄 것이다.

이상 살펴본 것처럼 소상공인과 디자이너의 상생 디자인은 모두에게 이익을 준다. 이미 잘 하고 있는 대기업과 중견 기업이 아니라 소상공인과 디자이너가 만나는 것이야말로 우리 경제와 우리 삶의 환경을 풍요롭게 만드는 열쇠다.


디자이너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끝까지 도전할 것!
모멘텀 스튜디오(유재곤, 김승균) + 게릴라즈(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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