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 생활 속 소소한 즐거움이 깃든 물건, 사람, 생각을 디자인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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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서 작업에 대하여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왜 전통을 소재로 작업을 하나요?’ 이다. 아마도 이러한 모습이 일반적으로 느껴지지 않거나 혹은 다른 좋은 게 있는데 왜 굳이 전통에서? 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신이 아닌 이상 인간이 할 수 있는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것을 새롭게 보이게 만드는 작업이다. 무엇인가 없다면 창조를 못 해내는 것 이 인간이다. 그렇기에 과거의 것을 기웃거리며 소재 삼는 것이 당연한 창조의 행위인 것이다. 심지어 해외 유수의 디자이너들은 새로움을 만들기 위해 다른 나라의 전통까지 기웃거리는 마당에 우리는 우리 것부터 소재 삼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전통 가구 중에서 가장 매력적으로 느끼는 것은 소반이다. 다른 문화의 테이블과는 확연한 차이점, 각상(1인 1상)이나 좌식용이나 나주반, 통영반, 해주반 등 지역적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점 등은 형태적 아름다움 이상을 느끼게 해준다. 어느때 보다 플라스틱이라는 소재가 비난을 받는 시대에 굳이 플라스틱을 사용한 소반을 디자인해야 했을까? 나의 대답은 플라스틱이 나쁜게 아니라 나쁘게 사용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쉽게 쓰고 버리는 나쁜 사용을 줄이고 오랫동안 아끼고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플라스틱이 500년 동안 썩지 않는 다면 반대로 500년 동안 대대손손 물려주며 사용할 수 있다. 사진의 RE:SOBAN은 LET ZERO 라는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제작되었고 재활용 플라스틱 외에는 어떤 다른 소재가 섞여있지 않아 폐기시에도 100% 다시 재활용 된다. KNOCK-DOWN 방식으로 디자인되어 운반 시 3분의 1 사이즈로 부피가 줄어든다. 소반이라는 전통 아이템이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의 시대성을 반영하여 ‘미래의 전통’이 된 것이다. 1회용 플라스틱 용기는 재료의 나쁜 사용방법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코로나가 한참 유행하던 기간에 매일같이 쌓이는 배달용 밀키트 케이스를 보면서 올바른 사용방법을 제안해 보겠다는 생각의 결과가 한옥 밥상보다. 1회용기와 동일한 소재와 제작방법을 사용하지만 아끼고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다. 나는 디자이너로서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다거나 소재의 재활용 보다 오랫동안 쓰게 만드는 것이 더 나은 방향이라 생각한다. 오랫동안 사용하게 만드는 방법은 내구성 뿐만 아니라 한옥 지붕에서 보여지는 미감이 기물을 소중하게 여기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사용할 때나 그렇지 않을 때 모두 가치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우리의 과거를 탐구하다 보면 그 진가를 알아주지 못한 미안함과 마치 잘 익은 과일을 허락없이 따먹는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죄책감이 들 정도로 쉬운 창조의 원천이 너무 가까이 있어 잘 보이지 않을 뿐.
유엔에서는 2016년부터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를 발표하며 2030년까지 17가지 주 목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총 17가지 주목표 중에 12번째 목표는 '지속 가능한 소비와 생산(Responsible Consumption and Production)'이다. 빈곤, 기아, 성 평등, 위생 등 다양한 인류의 문제와 더불어 지구 환경 개선을 위한 목표 중 가장 우리 삶에 밀접한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지속 가능한 소비와 생산은 과연 무엇이고, 우리는 디자이너로서 어떤 것들을 할 수 있을까? 먼저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지금은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용어지만, 그 시작은 1987년 세계 환경개발 위원회(WCED)에서 발표한 보고서이다. 그 보고서에는 지속 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을 '미래 세대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전'이라고 정의하였다. 즉, 다음 세대에 자원을 남겨줄 수 있는 선에서 지금의 자원을 소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사실 그 시작은 ‘나무’ 다. 산업화된 목재 자원은 관리되는 숲에서 자라게 되고 일정 기간이 되면 베어져서 소재가 된다. 벤 자리에는 다시 어린 나무를 심어 그 주기를 맞추는 것이 바로 지속가능성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시대에 와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라는 용어가 많이 보이는 이유는, 모든 산업의 자원 활용에 그러한 논리가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 디자인은 이러한 흐름과 어떠한 연관을 맺고 있을까? 디자이너는 생산과 소비에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실무자이다. 상품이 시장에 선보이기 전에는 그 상품이 어떤 형태와 기능을 지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역할이라면, 그 상품이 시장에 나온 이후에는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한 모든 매체를 디자인해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제품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브랜드 디자인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분류하기는 하지만 디자이너는 상품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영역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사실 가장 크게 대두되고 있는 것이 바로 소재이다. 생산과 연결 지어 생각해 보면 소재는 가장 기초가 되며 산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상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소재가 중심이 되어 논의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소재는 대부분 가격에 의해 결정이 되고 그마저 개발과정에 후순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근래 많은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소재-중심 디자인 방법론(Material-driven Design Methodology)의 확장으로 소재를 어느 단계에서든 가장 우선으로 고려하고 모든 프로세스를 소재가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하는 시도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경제적 논리에 의해 상품을 바라봐왔던 시각이 환경적 논리까지 함께 고려해야 되면서 자연스럽게 소재가 중심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디자이너는 단순히 소재의 가공과 활용뿐 아니라, 소재의 생산-사용-폐기의 전 주기 시스템을 파악해야 하고 그 안에서 최선의 방법으로 디자인해야 할 것이다. 디자이너의 역할은 단순히 상품을 만들 때 소재를 생각한다에 그치지 않는다. 상품이 만들어지고 나서도 소재에 대한 필요성과 당위성을 끊임없이 소비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이는 소비자를 설득하는 과정이다. 기존의 경제 논리로 보자면 지속 가능한 소재로 만든 상품이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생산-사용-폐기까지 전 주기에서 환경적 가치를 따진다면 결코 높은 비용은 아닐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지금 당장이 아닌 미래에 발생될 비용을 소비자에게 함께 나누자고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개개인이 아닌 사회와 환경을 생각해야 가능한 논리인데, 그러한 논리를 표현하고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디자이너의 역할이다. 그로 인해 소비자는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소비 행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한 장의 투표라고 생각한다면, 소비자는 디자인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정보가 아닌 정제되고 정확한 정보로 자신이 지지하는 가치에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시대든 항상 그 시대의 '시대상'이 반영된 디자인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영향을 끼쳐왔다. 지금 시대에 필요한 시대상은 무엇일까? 그런 의미에서 세상의 어지러운 뉴스들과 더불어 유엔의 지속 가능한 소비와 생산'의 발표는 디자이너로서 충분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나의 두 번째 책인 <공간 산책>의 에필로그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요즘 한국이 바게트 빼고 다 이겼다” 대한민국, 그중에 ‘서울’은 여러 방면에서 역량이 최고 수준에 달했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최고의 수준에 수순처럼 따라오는 풍요로운 환경 속에 사는 것이 축복이기도 하지만 나와 같은 업을 가진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어떻게’ 새로운 시대에 발맞춰 기획하고 디자인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또한 깊어졌다. 빛의 속도로 발전되는 AI가 디자인 영역을 언제 장악할지에 조바심마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까지 한다. 물론 사람의 감성을 진심으로 믿는 나에게는 아직도 멀게 느껴지는 부분이지만 AI의 커져가는 존재와 넓어지는 역량은 부정할 수 없는 요소임에 분명하다. 요즘 대한민국의 젊은 친구들은 소위 안목이 상향 평준화되었다 할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본능이라 해도 무리 없는, 예쁜 것에 대한 촉이 뛰어 나다. 여기에 자신을 가꾸고 사랑하는 마음까지도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상향 평준화를 손사래 치기 위해 먼저 썰을 푸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의 과제 결과물을 평가할 때 나 또한 반성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새로운 것들에 빠르게 반응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학생들에게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 게다가 그들이 가진 새로운 재능은 한계도 없어서 정해진 틀을 거부하고 다양한 시도와 도전으로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해낸다. 틀과 규범에 맞춰 오와 열, 숫자를 맞추는 데 심혈을 기울이며 기술을 쌓았고 철학을 입히며 공간의 스토리를 만들었던 내가 지나왔던 예전과는 확실히 다른 그런 세계관이랄까! 이런 세계관과 더불어 교과서적 전문지식 하나 없이도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멋진 공간을 만들고 기립박수 받는 브랜딩을 척척해낸다. 전문지식이 없어진다는 건 디자인 분야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다는 의미로 앞으로 우리나라에 디자인을 위해 어떤 인재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생각해 보게 된다. 강의할 때 항상 강조하는 게 있다. “디자이너의 미래는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공간을 창조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정확한 활용 방안 제시하는 기획력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을 줄 알아야 한다”라고. 이것은 미래 세대에게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라 사실 나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이기도 하다. ‘그래, 그렇다면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담아야 하는데?’라고 역질문하게 될 것이다. 완벽한 정답이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분야의 한계를 없애고 모든 카테고리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내 경험에서 우러난 최선의 답변이 될 수 있겠다. 나아가 모든 것을 넓게 포용하는 마음의 태도 역시 중요하다. 자신의 관심 분야가 아니더라도 알고자 노력하는 태도, 차별과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하고 브랜드를 흡수하는 태도를 갖춘다면 견고하고도 오래 지속되는 디자이너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내밀어 본다. 패션 디자이너만이 명품 패션 브랜드의 크레에이티브 디렉터가 되던 진부한 시대는 지났다. 가수가 패션 디렉터가 되고 래퍼가 상업 디자이너가 되며 일반인이 세상 유명한 셀럽이 되는 세상이다. 그 누구도 아닌 그 누구나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 바로 이 글을 읽고 있는 젊은 친구들이다.
2023년 서울의 가을에는 여러 가지 행사가 열린다. 성수동에 요즘 주말 토/일 이틀간 열리는 팝업이 40-50개가 넘는다는 기사를 보았다. 말 그대로 팝업의 시대이다. 여러 브랜드에서 신제품을 알리기위해서 혹은 제품 홍보를 위해서 많은 브랜드들이 존재감을 알리기위해 열심히 노력 중이다. 기존의 고정된 스토어와는 다르게 짧게는 하루 길게는 몇 주 정도의 시간 동안 한정적인 행사지만 오히려 그 제한된 시간이 사람들로 하여금 팝업을 찾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서울을 찾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가벼운 취미로 가드닝을 하고 있다. 50평 남짓한 공간에 먹을 수 있는 작물도 심고, 모종도 심으며 여러 가지 초보 가드너로서의 시행착오를 경험하는 중이다. 실제로 자료를 조사하려고 가드닝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질문을 하다 보면 내가 활동하고 있는 디자인 커뮤니티 보다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가드닝을 즐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회사의 책상 위에서, 아파트 테라스에서, 주택의 옥상에서, 조금만 바람 통하고 배수가 잘 되는 공간에는 어김 없이 아마추어 가드너가 작은 화분을 놓고 식물을 가꾸고 있다. 가드닝 커뮤니티에서는 삽목을 하기 위해서는 가지를 몇 도의 각도로 잘라야 하는지, 삽목을 위한 토질은 어떠해야 하는지, 시시콜콜한 정보들을 교환하며 가드닝 하는 즐거움을 나눈다. 취업 정보와 스펙, 디자인 어워드를 받는 방법, 산업으로써 디자인 등의 너무나 현실적인 정보를 공유하는 디자인 커뮤니티나 디자인 관련 행사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즐거워 보였다. 대단하지 않지만 생활의 자투리 공간에서 즐길 수 있는 가드닝의 작은 즐거움을 공유하는 소소한 소통이 너무 따뜻하고 부러웠다. 우리에게 디자이너들에게 디자인이란 것은 직업/산업으로써 생존을 위해 경쟁하는 도구일까, 하나의 즐기고 향유할 수 있는 문화가 될 수 있을까? 지금 서울의 디자인 신에서 디자이너들은 디자인하는 즐거움을 같이 향유하고 소통하고 즐기고 있는지 질문을 던지며 산업의 지표로써 디자인은 늘 정량적인 잣대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디자인은 영화나 예술처럼 하나의 문화의 장르일 수도 있고 다른 산업/문화의 성장을 돕기 위한 협력자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우리 디자이너들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직업으로써의 디자인과 순수하게 즐거움을 향유하는 문화로써의 디자인, 어쩌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저는 오랫동안 백화점에서 바이어로서 일해 온 사람으로 디자인 업계의 전문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백화점 생활을 시작할 때와 지금을 비교할 때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는 유통 채널에서도 아주 큰 의미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10년 전 백화점에서 혼수를 준비하던 고객님들은 거의 대부분 친정 엄마의 추천이나 먼저 결혼한 친구의 추천으로 브랜드를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의 고객들이 몇 안되는 브랜드로 추려지는 옵션 안에서 구매를 하셨고 관련 매출 역시 특정 브랜드들에 집중되는 경향이 컸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본인의 취향을 반영해 브랜드나 상품 구성을 선택하는 비중이 높아졌고, 메가 트렌드, 웨딩 특화 브랜드라는 개념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혼수 고객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상품 카테고리에서 보여지고 있습니다. 다양화, 개인화되고 있는 고객의 선택에서 브랜드와 디자인의 의미는 어떻게 달라 졌을까요? 예전에 ‘남들에게 잘 알려진’ 브랜드를 찾던 사람들이 지금은 ‘나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브랜드를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는 그 브랜드와 상품이 가진 디자인과 스토리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나의 라이프스타일이나 가치관과 잘 맞는 디자인, 공감되는 브랜드 스토리를 찾은 고객은 그 브랜드와 상품의 열정적인 지지자가 됩니다. 그리고 이런 고객의 변화에 맞추어 오래 전에는 비슷비슷해 보이던 브랜드 매장들의 인테리어도 해당 브랜드의 컨셉과 스토리를 잘 보여주기 위한 공간으로 변화되면서 이제는 하나의 중요한 마케팅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이전의 백화점은 ‘100가지의 물건이 있는 곳’으로 그 중심 개념이 ‘상품’에 있었다면 이제는 고객들의 ‘100가지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디자인과 스토리’가 담긴 공간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세계적인 현대미술 아트페어 이 개최되며 작년보다 더 큰 규모와 행사로 서울 전체가 들썩였다. 파리, 마이애미, 런던, 바젤, 홍콩에 이어 이제 매년 서울로 아트 페어 기간 동안 몰려올 엄청난 국내외 인파들을 자연스레 기대하게 되었다. 올해 더욱 예술가, 갤러리, 컬렉터, 아트 커뮤니티 관계자, 그리고 일반 관람객들로 넘쳐나는 이유는 수백만 원에서 수백억 원에 이르는 세계적인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짧은 찰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편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운 쓰레기’로 보일 수 있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작품 한 점에 수백억을 호가하는 뱅크시가 폐허가 된 건물 창문에 그려 놓은 그림이 그저 그라피티 낙서로 알고 집을 부숴버린 주인이 있듯, 작품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여러 시대를 거쳐 보존되어 사람들에게 예술이 줄 수 있는 감동과 위안이 되는 작품들이 과연 이번 아트페어에서 몇 점이나 될까. 지금 우리는 AI로 집과 옷을 만들고 사람을 치료하고, 교육하며 예술 작품조차 분류, 인식, 예측하고 창작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 윤리와 공정성, 시각적 디자인과 인터렉션 디자인, 성능 및 효율성 최적화, 지속적인 개선, 윤리와 공정성... 이것이 AI 디자인의 원칙들인데 이렇게 철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편향을 최소화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훈련되는 AI 시스템도 결국엔 사용자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길 원한다. 이쯤에서 나는 궁금해진다. AI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인해 예술, 산업 등 물질들은 더없이 늘어날 테지만 정작 7년 후면 4도 이상 치솟는다는 지구 열대야에 대한 AI의 대안은 무엇일까? 저 많은 원칙들이 과연 7년 후면 소멸할지 모르는 지구 절반에 해당하는 생태계를 반영한 데이터들 일 수 있을까? 우리는 여전히 지금처럼 ‘아름다운 쓰레기’를 만들고 소비하는데 급급해하고 있을까? AI가 가져올 새로운 시대에 디자이너와 소상공인들이 할 수 있는 대체 불가한 그것은 무엇일까? 내가 찾은 답은 소통과 협력 그리고 노하우다. 그것들이 결국엔 지구와 인류를 지속 가능케 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목표와 의무가 되었으면 한다. 환경 보호를 명분으로 수많은 텀블러와 에코백을 만들어 내는 모순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중동 최고의 부와 권력을 가진 어떤 이는 수십 조를 투자해 인간 수명 연장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불바다, 물바다가 된 지구에서 수 십조의 아름다운 쓰레기와 200년을 더 살아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더욱 진중하게 되묻게 된다.
디자인에 있어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요즘, DDP디자인론칭페어 참가자와 멘토의 신분으로 마주하며 느끼게 된 것들이 있다. 우선 대부분의 디자이너나 소상공인들은 지속가능성을 친환경과 동일시하여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그중 하나이다. 이러한 생각들은 자연스럽게 지속가능성을 본인들의 결과물에 투영하고자 하는 바람에 영향을 주어, 생산에 소비되는 재료나 디자인 결과물의 폐기 후 처리 방식 등에 관심을 집중하게 만든다. 이는 바람직한 전개 과정임이 분명하지만 이런 대화를 반복하게 되는 나는 종종 모두가 하나의 방식으로 나아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으로 삐딱한 마음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멘티와의 대화 중에 지속가능성을 다른 방식으로 고민하고 표현할 방법은 없는지 되묻는 일이 많았다.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한 삐딱함일 수도 있지만 생각해 보면 환경에 입각한 소재의 생산과 후 처리의 과정에서 개발자가 아닌 경우 시도할 수 있는 영역이 제한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전 인류의 거대한 움직임 속에 이러한 시도가 얼마나 효과적일지 또는 이러한 시도 자체도 결국 불필요한 무언가를 다시 양산하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하게 하며 더욱 삐딱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더 자라나면 결국에는 ‘나 하나쯤이야’로 귀결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나의 관점에서는 쉽게 져버리기 힘든 고민이다. 지난 학기에 한 대학원 수업에서 학생들과 나눈 이야기도 이러한 배경에서 연결된다. 누군가는 환경을 위해 구매한 텀블러가 집에 몇 개씩 쌓여가고 있다는 푸념과 함께 종이 빨대로 음료를 먹을 때는 마치 물에 젖은 골판지 박스를 입에 물고 있는 것 같아 내키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에 나는 농담으로, ‘그러고 보면 종이 빨대로 환경에 이바지하는 것보다, 그 불쾌한 느낌에 탄식하며 배출하는 탄소량이 더 많을 수도 있겠네요’라며 웃고 넘어간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서 며칠 후 나는 다시 커피를 마시며 종이 빨대를 받아 들고는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종이를 이렇게 매끈하고 단단하게 만들려면 코팅이 필요할 텐데 이건 100% 환경적인 종이이긴 한 건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뉴스에는 외국 연구결과를 들어 종이 빨대가 몸에 유해한 영향을 주거나 코팅 과정과 화학적 화합물이 더해져 재활용에도 부적합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단정하긴 아직 힘들지만 우리가 관심을 갖고 휩쓸리는 환경적 이슈들의 상당수가 이러한 이면도 갖고 있음을 부정하긴 힘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개인적으로 지속 가능함이란 성분과 순환과 같은 거대하고 분석적인 것이기 보다 좀 더 낭만적인 관점으로 이해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모두의 구호 아래 동조해야 하는 활동이기 보다 소소한 개인의 삶에서 사적으로 지향하는 낭만적인 것으로서 지속 가능함을 바라보면 그 단어의 있는 그대로의 의미가 더 커질 수도 있다. 오래전에 구매한 사적인 물품들을 계속 간직하고 사랑하는 것. 애착이 가는 것들을 잘 관리하고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 물건을 구매할 때는 기능에서 나아가 조금 비싸더라도 오래 간직할 만한 것을 고르는 것. 무엇을 사려면 여러 날 고민하고 내 집에 들이는 것. 때로는 제 기능을 상실했음에도 함께한 시간과 기억 때문에 버리지 않고 가끔씩 꺼내 보는 것. 신중한 선택 후 함부로 바꾸지 않는 것. 결국 디자이너이자 소비자인 우리에게 있어서, 누군가의 골동품이 될만한 것을 만들고 간직하는 것도 지속 가능함의 한 측면일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을 처음 만나 직업이 라이팅 디자이너라고 소개를 하면 흔히들 ‘어디 조명기구가 좋아요? 추천하나만 해주세요’라고 묻는다. 라이팅 디자이너(lighting designer)는 라이트(light)라는 소재를 가지고 공간을 디자인하는 행위(ing)를 하는 디자이너다. 라이팅의 설계를 할 때는 조명기구(lighting fixture)와 조명시스템(lighting system)을 가지고 공간의 형태와 공간 마감재를 분석하고, 빛으로 공간을 어떻게 보이게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최근엔 라이팅 디자이너라고 하면 건축물에 조명 연출을 하거나 미디어 파사드가 많이 발달해서 이해도가 높아지긴 했지만 아직은 생소한 디자인의 영역이긴 하다. 건축물을 주간과 야간에 따라 다르게 보이도록 빛으로 연출을 하거나 공원 등의 외부 공간을 밝히는 야간경관 조명의 경우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보이는 디자인 작업으로 주변의 야간 환경을 분석하고 야간에 어떤 연출을 할지에 대해 디자인 콘셉트를 잡고, 조명기구를 고르고, 빛의 밸런스를 맞추며 디자인을 한다. 야간 경관조명은 주로 건축물의 파사드의 형태를 주간과는 또 다른 얼굴을 가지게 하며, 건물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가는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들이 디자이너들의 이름이나 브랜드들을 줄줄 꿰고 있는 조명기구는 주로 인테리어 라이팅 디자인을 할 때 데커레이션의 기능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인테리어 공간에서의 빛의 역할은 공간감을 나타내기도 하고, 생산성을 위한 기능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공간의 마감재로 쓰인 빛으로 공이 켜지고 공간을 비출 때, 잠들기 위해 조명을 끄고 외부의 빛이 들어올 때, 이런 모든 빛의 볼륨과 빛의 색, 비춰지는 형태와 반사되는 마감재에 따라 공간은 시시각각 변하며 다양한 표정을 보이게 된다. 우리가 조명기구 즉 라이팅 픽스처(lighting fixture)를 디자인할 때 가장 간과하기 쉬운 일이 그 조명이 놓이는 공간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형태만을 디자인하는 일이다. 시시각각 공간과 디자인 트렌드가 바뀌고, 기술이 발전하고 있고, 소재가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에 항상 필요한 디자인을 해야 조명기구가 공간에 놓이거나 빛을 비췄을 때 위화감 없이 디자인이 받아들여지고, 사랑받는 디자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건축의 마지막 마감재인 조명은 공간의 성격을 부여한다. 피사체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형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