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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디자인, 즐거움과 몰입에서 나온다

한글과 민화에서 발견되는 불가사의한 미의 서계
2021-09-24464


글 / 이세영(그래픽 디자이너, 갤러리조선민화 대표) 


한국적 디자인이라고 하면 한국적인 도상, 한국적인 색, 패턴 시각적인 것을 생각하기 쉽다. 여러 가지 한국적인 도상 한국적인 색채, 조형 안에 있는 선 등 여러 가지 모티브를 가져와서 물건에 입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적이라고 하면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스타일로 작업하다가 지금부터 한국적인 디자인을 해야지, 해서 책을 보고 자료를 옮기는 것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일반적으로 서양의 타이포그라피나 현대적인 조형에 탐닉해 있는 디자이너들이 전통디자인을 반영하고 싶으면 바로 책을 뒤지기 시작한다. 문양집을 찾고 이미지를 차용해 서 그냥 그래픽적으로 자기화시키곤 한다. 이런 경우 작업의 두께가 얇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디자이너들이 한국적인 분위기(?)를 내기 위해 궁서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궁서체를 본문으로 활용할 때 세로쓰기에 맞게끔 설계가 된 서체이다 보니 가로짜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궁서체와 모던한 디자인과는 맞지 않다는 얘기다. 


한국적 디자인은 지성을 들여야 한다 

한국적 디자인을 과제하듯 한국적인 도상을 찾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일차원적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것도 한국적이고 물 마시는 것도 다 한국적이다. 살아가는 방식도 다 한국적인 건데 일반적으로 한국적이라고 하면 전통만 전제로 한다. 그런데 전통은 이미지나 도상, 색, 선, 여러 가지 것들에 녹아 있다. 그것을 들춰내야 한다. 한국적 디자인도 개인의 안목과 감각에 의해 다르게 표현된다. 한국적 이미지를 살짝 채택하는 것보다 더욱 몰입을 한다면, 그 작업으로 내가 즐겁다면 성공적이라는 얘기다. 디자이너들이 영감을 얻기 위해서는 갤러리, 박물관, 도서관 등을 가야 한다고 말 하는데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한국적인 것은 한국적인 도상하고 아무런 관련도 없다. 무엇을 그려내려면 내가 일단 즐거움 속에서 그 대상 속 대상과 함께해야 얻어진다는 것이다. 그 즐거움 속에서 내가 그 무엇인가에 한없이 몰입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몰입은 앉아서 정신적으로 투자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료를 찾기 위해서 일차적으로 손을 뻗쳐서 찾는다면 만인의 편견이 함의된 것이기에 일단 부정해야 하고, 두 번째 것도 부정하면서 계속 찾아나가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만약 모든 디자이너들에게 한국의 색이라는 과제를 내줬다면 백의 민족, 오방색, 단청 등을 생각하기 쉽다. 그것을 일단 부정하라는 얘기다. 첫 번째 드는 발상대로 표현을 해버리면 누구에게도 감동을 줄 수 없다. 이처럼 두 번째 레이어, 세번째 레이어, 이렇게 한없이 들춰내야 되는 것이다. 많이 파본 사람일수록 상상력은 자신의 자산이 된다. 거기에 또 즐거우기까지 하면 최고인 것이다. 나는 발품을 많이 파는 편이다. 구름 문양이라면 전통 문양 중에서 구름 문양을 인터넷에 찾아보고 한계가 있으면 서점이나 박물관 등의 도록을 찾는다. 그런데도 해결이 보이지 않으면 문양 전문가를 찾아가는 식이다. 이렇게 골을 파게 되면 그 파헤친 것들이 큰 자산이 되어 쌓이게 되고 거기서 내 작업으로 돌입을 하게 되면 결과물이 크게 달라진다. 창의는 남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내가 빚는 것이다. 지성을 들여야 한다. 


한글과 민화에서 발견되는 불가사의한 미의 서계 

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창의적인 것이 바로 한글과 민화라고 본다. 우리만의 어떤 창의로 빚어진 문자와 그림이니까. 한글도 처음에는 집현전 학자들이 언문이라고 반대했고 최근까지 정사각형 틀 안에서 500여 년 동안 갇혀 있었다. 세종대왕이 한글 자체를 네 모 틀 안에 구겨 넣으라고 설계를 한 게 아님에도 한글은 구속된 채 지내왔다. 사실 한글은 초성과 종성을 똑같이 가는 것으로 설계해 정사각형 밖으로 나가는 것도 있었다. 윗선은 맞지만 밑에는 들쭉날쭉하게 설계가 되어 있다. 현대 디자인에 와서야 정사각형 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민화 역시 천대받기는 마찬가지였다. 문인화나 궁중화만 대단한 예술로 취급했고 민화는 속화로 분류돼 그림 취급도 하지 않았다. 일본의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사람이 “조선 땅에 가니까 불가사이한 미의 세계가 있다”고 소개하면서 많은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 와서 민화를 사들였다. 일본 문화 속에서 볼 수 없던 그 미의 세계가 조선에 있었던 것이다. 최근 세계에서도 한국 민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데 웬만한 조형 예술의 세계와는 다른 무엇이 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에 천대받던 비주류의 예술가들이 굉장히 창의적이고 해학적인 상상력의 절정을 이루었던 것이다. 

사실 한국적인 아름다움은 박제화된 미가 아니라 우리 일상에 녹아져 있는, 면면히 흐르고 있는 DNA로서 열정으로 찾으면 찾게 된다. 우리가 무시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관심만으로도 생명에너지가 가득한 예술을 찾아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문자도는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예(禮), 의(義), 염(廉), 치(恥)라는 여덟 가지 한자로 표현하는데 그게 사실 유교의 덕목을 이야기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 고사 하나하나가 다 충실하게 묘사된 그림을 그렸겠지만 가면 갈수록 문자도가 장식적으로 바뀌었다. 한자에 동그라미가 나타나고 있다. 어느 날 나는 문자도에서 믿을 ‘신’자에 받침 네모가 동그라미로 바뀌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대단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디자이너들이 조형을 다루다 보면 조형의 가장 근원을 원이라고 생각한다. 원은 우주를 상징할 수 있고 모든 거를 다 상징할 수 있는데 형태가 바뀌어도 제대로 읽힐 뿐만 아니라 더욱 심오한 뜻이 내재되는 것이다. 150년에서 200년 전에 굳이 네모를 동그라미로 틀었던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빚어진 자기 조형 세계 안에서 세상에 없는 글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던 위대한 디자이너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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