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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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사적 미감(美感)

맺음 대표 / 콜라보레이션 큐레이터 조은환
2022-08-24167

오래 전 미식(美食)이라는 것이 3대가 지나야 즐길 수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을 하신 분의 논리에 따르면 1세대에게 맛이란 음식으로부터 영양 섭취를 하기 위한 과정 중 하나일 뿐이고, 스스로가 맛을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것이라 해석됩니다. 이들에게 맛을 즐기는 것은 무엇이 정말 수준 높은 맛인지 깨닫는 과정이라기 보다 남들이 맛있다고 하는 것을 찾아 다니는 수준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다음 세대는 앞 세대가 추구해온 맛의 시행착오를 공유하며 보다 쉽게 맛을 즐기는 것에 친숙해진다고 봅니다. 반면 세 번째 세대에 이르면 맛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향유할 수 있는 익숙한 유희가 되게 되고, 그들에게 무엇이 맛있고 아니고의 문제는 남의 의견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이기 보다 재료 본연의 맛을 스스로 깨닫는 과정에서 보다 더 궁극적 맛을 탐미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무리한 이해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 저는 요즘 현업에서 일을 하며 공간디자인을 향유하고 즐기는 것도 이와 유사한 과정을 거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국가의 경제력이나 문화수준과 연결되어 생계보다는 삶의 질에 주목하는 이 시대에 공간을 즐긴다는 것은 매우 궁극적인 미적 체험을 지향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입니다.

 

저의 주된 활동 분야인 공간의 기획, 실내 디자인, 건축 설계, 전시 공간 디자인 등은 많은 디자인 분야 중에서도 가장 큰 예산과 시간을 소요하는 분야이기에 클라이언트의 연령대도 상대적으로 매우 높습니다. 그러나 최근 미묘한 변화를 느낍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만났던 클라이언트들의 대부분이 5-60대 이상의 자본가였다면, 최근의 클라이언트의 연령대는 점점 저와 비슷한 나이대로 낮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주력 소비층이 바뀌며 자본력이 이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 과정에서 이들이 요구하는 공간적 요구와 눈높이의 변화가 완만하지 않다는 것을 느낍니다. 앞의 세대보다 공간을 향유할 여건을 오랜 기간 유지해온 이들은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조형적으로도 완성도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이전 세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좋은 선택을 하는 모습입니다. 이로 인해 안일했던 과거의 일부 디자이너 보다 좋은 안목으로 공간을 바라보는 클라이언트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유의 디자인 프로세스로 인해 클라이언트의 안목이 디자이너의 노력보다 결과물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간디자인 분야에 있어서는 매우 긍정적인 변화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이러한 변화를 앞의 비유로 구분하자면, 이들이 공간적 미를 향유하는 세 번째 세대라고 쉽게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공간을 준비하는 클라이언트들이 본인이 원하는 바를 설명하기 위해 가져오는 무수한 예시 이미지나 미드센츄리 류의 가구로 채워진 공간들을 볼 때에 꽤 세련된 것들이기는 하지만 아직 개개인의 모습과 고민들이 드러나지는 않은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꽤 멋지고 세련된 공간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늘어나는 요즘 이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적어도 주거공간과 같이 사적인 공간이라면 단순히 멋지고 세련되기 보다, 점유자를 느낄 수 있는 특별함과 고유함을 더 자유롭게 추구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것입니다. 공간을 깊이 고민하고 향유하는 이들의 공간은 패션잡지에서 본 듯한 보기 좋은 것들로 채워진 공간이기 보다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이 공간의 주체가 어떠한 결을 가진 사람인지를 기존에 느끼지 못한 감정을 통해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은 산만한 공간이라 할지라도 다른 무언가를 더하거나 빼기가 쉽지 않은 완전함을 갖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공간디자인을 직업으로 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이제 우리 주변의 공간을 다듬으며 자신을 다듬을 시간을 가져도 좋겠습니다. 온전히 자신에 집중하는 공간디자인의 과정은 그 자체로 즐겁고도 완성도 높은 디자인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DDP디자인페어와 같은 국내외의 큰 디자인 행사들은 결국 현재의 디자이너와 소비자 모두에게 당신만의 고유한 취향과 지향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를 자극시키고 촉진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이러한 계기들은 이를 준비한 이들의 온전한 고민들이 집적되어 보여지는 기회이기에 하나하나 완전한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고, 때로는 여러 개의 결과물이 커다란 무언가를 지향하며 동시대성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이러한 우리 주변의 모습에서 요즘의 트렌드가 무엇인지 알게 되기 보다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인지 더욱 분명히 알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주변에 대한 의식이나 가감 없이 나만의 공간들을 하나씩 변화시키며, 공간디자인의 매력을 사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때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회에 공간을 통해 사적 미감을 발휘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스스로의 현재와 지금 당신의 공간을 함께 둘러보기를 추천 드립니다.

 

내가 디자인한 프라이탁 메신저백
변화된 공간, 더욱 강해진 개인의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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